수양개선사유물전시

수양개 유적 소개

  • 수양개Ⅰ지구 발굴유물수양개Ⅰ지구 발굴유물
  • 석기 제작기술석기 제작기술
  • 마한시대 개관마한시대 개관
  • 수양개 유적 사적 398호

    수양개유적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실시된 충주댐 수몰지구조사의 일환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팀(이융조교수)에서 발굴·조사 하였다. 이 유적은 남한강 상류 지역인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수양개 Ⅰ지구)

    • Ⅰ지구(해발 132~137m)는 5차(1983년~‘85 ㆍ1996년)에 걸쳐 1,250를 조사하여 2개의 구석기 문화층(중기 ㆍ후기)을 확인하였다. 중기 구석기 문화층(Ⅴ층)에서는 규암으로 만든 찍개, 찌르개, 주먹대패 등 몸돌석기가 출토되었다. 수양개유적을 대표하는 후기구석기 문화층(Ⅳ층, 18,600BP,16,400BP)에서는 석기제작과정을 복원 할 수 있는 석기제작소 50곳과 27,000여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석기의 암질은 95%이상이 셰일(shale 판암)이며, 이 암질은 수양개에서 약1.5km 떨어진 산제골에서 가져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석기는 주먹도끼ㆍ찍개ㆍ주먹칼ㆍ밀개ㆍ긁개ㆍ새기개ㆍ좀돌날몸돌ㆍ슴베찌르개ㆍ 간돌도끼 등 정형화된 여러 유형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많은 수의 좀돌날몸돌ㆍ슴베찌르개와 함께 잔석기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 Ⅱ지구는 1996년~‘98년까지 실시된 5~7차에 걸친 발굴로 삼한시대의 대규모 취락 집터가 확인되어,당시 생활 문화상을 복원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 Ⅲ지구(해발 160~165m) 2001년 시굴 조사하여 2개 문화층을 확인 하였다. Ⅰ문화층(전기구석기)에서는 주먹대패ㆍ몸돌ㆍ격지 등이 출토 되었고, Ⅱ문화층(후기 구석기)에서는 찍개ㆍ밀개ㆍ긁개ㆍ새기개 ㆍ사냥돌 등이 출토되었다.

    수양개유적은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문화를 대표하며, 특히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좀돌날 제작수법의 확산과 전파과정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적지 위치표시 이미지

    수양개 유적 사적 398호

    - 주먹도끼류와 슴베찌르개ㆍ좀돌날 몸돌과 같이 출토되는 특징을 이루고 있다

    슴베찌르개 (有莖尖頭器, Tanged-point)

    돌날을 바탕으로 상단에서 대칭으로, 혹은 그에 가깝게 양 자리에서 잔손질을 베풀어 뾰족한 끝날이 있고, 그 반대편 끝단에는 잔손질을 통해 만든 슴베가 있는 석기이다.
    중기 구석기시대 이래로 후기 구석기 최말기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대륙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수양개 Ⅰ지구에서 출토된 많은 슴베찌르개는 아시아에서는 가장 다양한 유형의 유물이 발굴되어 비교연구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석기는 기능적으로 화살촉의 용도로 사용된 사냥도구로 추정된다.

    슴베찌르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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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돌날 (細石刃, Micro-blade)

    좀돌날이란 작은 돌날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길이와 너비가 2:1이상 이여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그 크기가 돌날보다 작은 것을 지칭한다. 세부 조건으로는 양 가장자리가 평행하고, 가로 단면의 형태가 삼각형이나 사다리꼴이며, 너비는 1cm이하의 것을 말한다.
    좀돌날은 그 자체로 사용하기 보다는 뼈와 뿔 나무 등에 끼워서 사용하는 결합식도구로서 파악되고 있으며,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에서 신석기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좀돌날몸돌 細石刃核, Micro-blade core)

    좀돌날몸돌은 이러한 좀돌날을 떼어내는데 쓰인 몸돌을 의미한다. 크게 3형식으로 분류된 많은 좀돌날몸돌은 아시아 후기 구석기문화의 기원과 전파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좀돌날 이미지

    돌날과 돌날몸돌 (石刃而 石刃劾, Blade & Blade core)

    돌날이란 격지의 한 종류로, 일반격지와 구분되는 특징은 양 가장자리가 평행하고, 길이와 너비가 2:1이상인 것을 의미한다. 돌날몸돌이란 돌날을 연속적으로 떼어낸 몸돌을 말하며, 돌날몸돌에서 돌날을 떼어내기 위해 필요한 제작기술을 돌날기법이라 부른다. 이는 후기 구석기시대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돌날기법은 단순히 돌날을 만들어 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동질의 석기소재를 원석재에서 다량으로 일시에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원석재의 효율성과 석기제작의 능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의미한다. 돌날은 그 자체를 도구로기도 하지만 밀개ㆍ긁개 ㆍ새기개ㆍ뚜르개ㆍ슴베찌르개 등의 소재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대표 유적으로는 석장리ㆍ수양개ㆍ고례리ㆍ금굴ㆍ진그늘유적 등이 있다.

    주먹도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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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도끼 이미지

    주먹도끼 (握斧, Hand-axe)

    주먹도끼의 기술형태학적 특성은 석기의 양면이 모두 떼어낸 것을 원칙으로 한다. 모양은 매우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끝이 뾰족하고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 혹은 타원형이다. 가로날 도끼 중에 양면박리로 된 것을 포함시키기도 하며, 큰 자갈돌이나 격지, 암괴 등을 활용하여 만든다.주먹도끼의 사용흔적 분석결과, 사냥, 도살행위, 나무가공, 가죽가공, 뼈가공 등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양 수양개(후기 구석기) 영국 대영박물관 한국관전시

    긁개 (搔器, Scraper)

    원석, 격지, 돌날, 부스러기 등의 석재 가장자리를 박리해서 직선날, 볼록날, 오목날을 가파르게 형성한 석기로, 이 석기는 구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서 존재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가죽을 벗기고, 나무나 뼈를 깎는데 쓰는 석기로 추정된다 긁개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면 7cm이상을 대형긁개, 3~7cm를 중형긁개, 3cm이하를 소형긁개라고 부른다. 각 긁개의 종류는 긁개날의 잔손질 상태, 잔손질 위치, 날의 형태에 따라 세분한다. 이 중 소형긁개는 후기 구석기 후반에 자주 나타나는 지표석기로 각 유적마다 긁개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긁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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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개 (搔器, End-scraper)

    돌날 또는 격지의 한쪽 끝을 잔손질하여 만든 석기이다. 일반적으로 날이 둥굴며 날의 너비보다 길이가 더 길다. 이것은 대개 수평면에서 15°가량 세우서 안쪽에서 밖으로 내밀면서 깎아내는데 쓰는 석기이다. 밀개의 용도는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데 쓰는 석기로 길거나 둥근 끝쪽에 부채꼴 잔손질을 더한 것이다. 날의 각이 가파르고 둔하며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만든다.

    밀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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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기개 이미지

    새기개 (彫劾刀, Burin)

    1회 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수직에 가깝게 박리해서 격지를 떼어내어 날카로운 끝날을 조성하여 만든 석기로, 날은 보통 1차 생산물의 두께에 비례하며 뼈, 뿔, 나무를 새기거나 자르거나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석기는 기능적으로 새기기용 칼의 용도로 사용되지만, 주로 이 석기를 손잡이에 고정시킬 때 어떻게 날의 방향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적인 측면이 달라진다. 날카로운 날을 자르는 방향과 평행하게 할 경우 자르는 용도로, 날을 수직으로 놓을 경우 새기는 용도로 사용된다. 형태학적으로 새기개는 두 작은 면은 가진 대칭형 새기개, 두 작은 면을 가진 비대칭형 새기개, 측면에 잔손질된 두 작은면을 가진 대칭형 새기개, 양 측면에 잔손질된 두 작은면을 가진 대칭형 새기개, 양 측면에 잔손질된 두 작은면을 가진 비대칭형 새기개, 측면에 잔손질된 구석 새기개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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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날석기 이미지

    톱날석기
    (Denticulate tool)

    잔손질에 의해 날 가장자리에 연속적인 오목날이형성되어 형태적으로 톱날이 형성된 석기로, 나무나 뼈를 다룰 때 주로 사용된다

    홈날석기와 뚜르개 이미지

    홈날석기(Notched tool)

    돌날이나 격지의 날에 홈을 낸 석기로홈날은 뼈, 뿔, 나무를 자르거나깎는데 쓰인다.

    뚜르개(Borer)

    나무나 뿔, 가죽에 구멍을 뚫거나 홈을 파는데 사용되는 연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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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는유물 (接合遺物, Refitted Core & Flakes)

    붙는 유물은 「접합유물」 이라고도 하는데 몸돌에 가해진 힘에 의해 떨어진 격지 쪽의 凸자 모양의 면과 격지가 덜어진 몸돌쪽에 남은 자 모양의 면이 딱 들어맞게 되맞추어진 상황을 말한다. 이러한 접합 작업은 석기를 주로 연구하게 되는 구석기시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석기제작자의 석재의 선택 기준과 제작의도 및 제작 공정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붙는 유물의 평면 분포를 통해, 하나의 석기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범위, 제작자의 석기제작위치, 유적내에서 공간의 이용 범위 등 당시 생활 문화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 석기제작소 이미지

    석기제작소

    수양개 Ⅰ지구유적에서 50곳의 석기제작소가 발굴되어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제작 기술에 대하여 해석,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찾게 되었다.

    석기제작소 = 모루돌 + 몸돌 + 격지(조각돌) 등의 유물들이 함께 출토 되며, 떨어진 돌들 중 서로 맞는 유물들이 발견된다. 이를 통해 석기를 제작해 나가는 과정을 복원하고 석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낼 수 있다.

    석기제작방법

    • 직접떼기

      → 직접떼기
      돌망치로 석재에 직접 타격을 가해
      석기를 만듦
    • 잔손질

      → 잔손질
    • 모루떼기

      → 모루떼기
      석재를 모루돌 위에 올려놓고 쳐서
      격지를 떼어내는 방법
    • 뽈망치 직접떼기

      → 뽈망치 직접떼기
    • 눌러떼기

      → 눌러떼기
      뿔, 뼈 등으로 만든 송곳 모양의 가압기
      를 사용하여 격지나 돌날에 대고 눌러서 직접 격지를 떼어냄
    • 간접떼기

      → 간접떼기
      석재에 단단한 뿔이나 나무, 자갈 등을
      쐐기처럼 이용해 석기를 만듦
  • 마한시대 개관

    마한시대 馬韓時代(기원 전후 ~ 300년경)는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단계로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국가 단계로 성장하고 있었고, 남부 지역에서는 백제와 신라, 가야의 모태인 삼한(三韓)이 있던 시기이다. 또한 평양 일대에 설치된 낙랑군은 중국 문화가 유입되는 통로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철기 생산이 본격화되어 철기가 일상도구로 널리 보급, 사용되었으며, 중국이나 왜ㆍ북방과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이와 함께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이 도입되어 굴가마에서 토기를 굽기 시작하였고, 목기와 칠기 등의 생활용품 제작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수양Ⅱ지구

    수양Ⅱ지구 이미지
    수양개Ⅱ지구는 마한시대의 생활유적으로 강안을 따라 약 5만 여 평에 유적이 형성되었으며, 유적 일부분을 조사한 결과 26기의 집터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중원지역에 대한 시기의 유적 중 최대규모의 생활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집터는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모두 불탄집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집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기둥ㆍ판자ㆍ서까래ㆍ갈대와 불먹은 흙덩이 등이 잘 남아 있어 집의 구조 복원이 가능 하여졌다. 또한 불땐자리는 진흙만 이용하거나, 진흙+강자갈로 만든 2가지 유형이 있는데, 모두 집의 중앙에서 북벽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만들어졌다. 집터에서는 불탄 쌀/보리/밀/조/콩 등 많은 양의 낟알과 집돼지뼈 등이 출토되어, 다양한 유형의 연모와 함께 당시의 식생활과 농경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생활유적

    마한시대의 생활유적으로는 집터와 조개더미가 있다. 집터는 대부분 낮은 구릉이나 강변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평면의 긴 네모꼴의 움집이 많으며 내부에는 편평한 돌을 직경 1m 가량의 타원형으로 편 후 그 위에 점토를 덮고 북쪽에 큰 판석을 세운 화덕자리가 있다. 중부 지역에서는 출입시설이 있는 ‘呂(여)’자형 또는 ‘凸(철)’자형의 집터가 조사되었으며, 남부 지역에서 조사된 집터는 별도의 출입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원형이나 방형이다.
    조개더미는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가비가 쌓여 이루어진 쓰레기더미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뼈연모, 꾸미개, 철기, 석기 등의 도구들뿐만 아니라 동물뼈, 조가비 등의 자연 유물도 풍부하게 출토되어 당시의 환경과 생활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덤

    마한시대의 무덤(墓制)은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고구려 및 낙랑이 위치한 한반도 북쪽에는 돌무지무덤, 덧널무덤, 벽돌무덤 등이 채택되었고, 남쪽에는 초기철기시대로부터 계승ㆍ발전된 널무덤, 독무덤과 새로이 덧널무덤, 주구묘(周溝墓) 등이 만들어졌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의 환런(桓仁)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냇돌을 네모지게 깔고 그 위에 널을 놓은 후 다시 돌을 쌓은 형식이다. 한강(漢江)과 임진강 유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남부지역에서는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이 주로 사용되었다. 널무덤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무덤내부에는 여러 종류의 토기와 철제 무기류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중국 거울(漢鏡), 세발솥(靑銅鼎), 투겁창(廣形銅鉾) 등 외국 유물이 출토되기도 한다. 덧널무덤은 마한시대 후기에 나타나 점차 발전하면서 삼국시대 전반기까지 널리 유행한 묘제이다. 덧널무덤은 주로 구릉 말단부의 대지 위에 만들어지며 널무덤에 비해 토기나 철기 등 껴묻은 유물의 수량이 많아진다.
    중서부지역에 대부분 편중되어 있는 주구묘(널무덤 외곽에 도랑을 돌리는 무덤)와 독널무덤(항아리를 맞물린 무덤)형식의 묘제도 사용되었다.